💡 들어가며: 길 하나를 사이에 둔 '초고밀도 개발'의 엇갈린 운명
2026년 3월, 오세훈 서울시장의 역점 사업인 '녹지생태도심'의 심장부, 세운지구 현장에서는 전례 없는 촌극이 벌어지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종묘와 직접적으로 마주 보는 '세운 4구역'은 국가유산청(구 문화재청)의 경찰 고발 사태로 중장비가 전면 철수하며 공정이 올스톱된 반면, 불과 길 하나를 사이에 둔 '세운 5구역(5-1·3구역)'은 정상적으로 공사가 진행되며 극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동일한 '세운재정비촉진지구'라는 마스터플랜 아래 묶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화유산 보존이라는 강력한 비재무적 규제가 개별 구역의 사업 속도와 가치를 어떻게 극단적으로 갈라놓는지 도시계획적 관점에서 심층 분석한다.
1. 세운 4구역의 셧다운: 유네스코 경고와 국가유산청의 '고발 강수'
세운 4구역은 종묘 정전에서 남산으로 이어지는 역사적 경관 축의 정중앙에 위치한 탓에, 세운지구 내에서도 가장 엄격한 고도 제한을 받아온 곳이다. 최근 서울시가 이곳의 용적률을 1,000% 이상으로 끌어올리고 최고 높이를 145m로 완화하려 하자, 그동안 누적되었던 갈등이 결국 사법 리스크로 폭발했다.
① 무단 시추 논란과 공사 중단 사태 3월 중순, 사업시행자인 SH공사가 4구역 내 매장유산 유존지역에서 허가 없이 최대 38m 깊이의 시추 작업을 진행한 정황이 적발되었다. 이에 국가유산청장은 즉각 현장 공사 중단 명령을 내리고, SH공사를 매장유산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전격 고발했다. 이로 인해 4구역 현장의 굴착기 등 중장비가 전면 철수하며, 사업은 기약 없는 셧다운 상태에 빠졌다.
② 유네스코의 '세계유산영향평가' 압박 더 큰 문제는 국제사회의 개입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는 3월 말까지 145m 고층 개발이 종묘에 미칠 영향을 검증하는 '세계유산영향평가' 이행 확약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오는 7월 종묘를 '보존 의제(위험에 처한 유산)'로 상정하겠다고 경고했다. 이는 단순한 행정 절차 지연을 넘어, 4구역 정비사업 전체의 밑그림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할 수도 있는 치명적인 규제 리스크이다.
2. 질주하는 세운 5구역: 경관 규제의 사각지대가 확보한 '속도 프리미엄'
반면, 4구역과 인접한 세운 5구역(특히 5-1구역과 5-3구역)은 경찰 고발 사태와 무관하게 정상적인 철거 및 기초 공정이 활발히 진행 중이다. 동일한 도심 고밀 개발 계획안에 포함되어 있음에도 5구역이 규제의 칼날을 피할 수 있었던 이유는 명확하다.
① 종묘 경관 축에서의 상대적 이탈 5구역은 4구역 대비 종묘 정전 중심축에서 동남쪽으로 비껴나 있다. 유네스코와 국가유산청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종묘 정전 지붕 위로 솟아오르는 현대식 빌딩의 시각적 침범' 문제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이러한 지리적 이점 덕분에 5구역은 세계유산영향평가라는 거대한 허들을 비켜 가며 당초 계획된 인허가와 착공 절차를 순조롭게 밟고 있는 것이다.
② 하이엔드 오피스와 주거의 복합 개발 가속화 인허가 리스크가 해소된 5구역은 프라임급 오피스와 하이엔드 레지던스가 결합한 콤팩트 시티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4구역이 멈춰 선 사이, 5구역은 도심 핵심 업무지구(CBD)의 신축 공급 부족을 선점할 수 있는 '속도 프리미엄'을 독식하게 되었다. 이는 정비사업에서 단 몇백 미터의 입지 차이와 문화재 앙각(올려다보는 각도) 규제가 사업성(B/C)에 얼마나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주는 완벽한 사례이다.
3. 실무적 시사점: 3자 협의체와 비재무적 리스크 관리의 중요성
세운 4구역과 5구역의 엇갈린 운명은 향후 대한민국 도심 정비사업에 중대한 시사점을 던진다.
과거의 재개발이 '조합원 간의 이익 분배'나 '시공사와의 공사비 협상'이라는 재무적 리스크 관리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도심 한복판일수록 문화유산 보존, 국제 규범(유네스코) 준수와 같은 '비재무적·사회적 리스크'가 사업의 생사를 가른다는 점이다.
다행히 최근 서울시가 국가유산청의 고발 조치에 유감을 표하면서도, 사태 해결을 위한 '3자 협의체(서울시장·종로구청장·국가유산청장)' 구성에는 긍정적으로 화답했다. 4구역의 145m 초고층 계획안이 이 협의체를 통해 어떤 타협점(층수 하향 조정 또는 혁신적 디자인을 통한 시야 확보 등)을 도출해 내는지가 향후 세운지구 전체, 나아가 서울 도심 복합개발의 가이드라인이 될 것이다.
💡 마치며
세운지구는 현재 대한민국 도시계획의 가장 거대한 실험장이다. 규제에 묶여 중장비가 떠난 4구역과 타워크레인이 쉴 새 없이 돌아가는 5구역의 이질적인 풍경은 정비사업 투자의 냉혹한 현실을 대변한다. 도심 고밀 개발과 역사 보존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다가오는 3자 협의체에서 소모적인 법적 공방을 멈추고 합리적인 스카이라인 합의가 조속히 도출되기를 기대한다.
📊 심층 분석, 함께 보면 좋은 글
- 이전 글 1 : https://architect0217.tistory.com/70
- 이전 글 2 : https://architect0217.tistory.com/66
[정비사업 심층분석] 화려한 입주 이면의 1,500억 빚잔치: 청담 르엘 조합장 해임과 롯데건설 공사
💡 들어가며: 강남 하이엔드 랜드마크를 덮친 '입주 후 폭풍'2026년 3월 현재, 강남권 최고급 주거 단지로 화려하게 입주를 마친 '청담 르엘(구 청담삼익 재건축)'이 최악의 내부 갈등에 휩싸였다.
architect0217.tistory.com
[정비사업 심층분석] 공사비 인상분 '50% 절반 부담' 가이드라인의 실효성: 청담 르엘 사태와 갈등
💡 들어가며: 정비사업의 뇌관 '공사비', 국토부의 고육지책이 나오다2026년 3월 현재, 대한민국 도시정비사업의 가장 큰 리스크는 인허가 규제도, 분양 경기 침체도 아닌 '공사비 증액 갈등'이다
architect0217.tistory.com